오늘의 묵상 - 시편 118:8~29
- 박정배

- 7월 15일
- 3분 분량
버린 돌로 머릿돌을 삼으시는 하나님
본문: 시편 118:8~29
■ 여는 말
시편 118편은 원수들에게 사면으로 에워싸였던 한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고 성전에 올라가 감사의 노래를 부르는 시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사람을 의지하다 무너져 본 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고백, 그리고 버림받은 자리에서 건짐받은 사람만이 아는 기쁨이 가득합니다. 오늘 새벽, 우리도 이 시인의 자리에 서서 누구를 신뢰하며 살 것인지, 하나님이 나의 인생으로 무엇을 행하고 계신지 함께 묵상하기 원합니다.
■ 1. 사람에게 기대지 말고 여호와께 피하십시오 (8~13절)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8~9절)
시인은 노래의 첫머리에서 인생의 결론부터 내려놓습니다. 여기 '피하다'는 히브리어로 '하사'라는 말인데, 폭풍이 몰아칠 때 새가 바위틈에 몸을 숨기듯 온몸을 던져 숨는 것을 뜻합니다. 머리로 "하나님이 도우시겠지" 하고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내 무게 전부를 하나님께 옮겨 싣는 것입니다. 시인이 이렇게 고백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사람도 의지해 보고 고관들, 곧 힘 있는 권력자들도 의지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뭇 나라가 벌떼처럼 자신을 에워쌌을 때(10~12절) 그를 건진 것은 사람의 줄이 아니라 '여호와의 이름'이었습니다.
12절에서 시인은 원수들이 벌들처럼 에워쌌으나 가시덤불의 불같이 타 없어졌다고 말합니다. 가시덤불에 붙은 불은 무섭게 활활 타오르지만 순식간에 사그라듭니다. 우리를 에워싼 위협도 그렇습니다. 지금은 사방이 막힌 것 같아도, 여호와의 이름 앞에서 그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시인은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를 세 번이나 반복하며 확신을 새깁니다. 오늘 우리를 에워싼 문제 앞에서 먼저 붙들어야 할 것은 사람의 연줄이 아니라,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 2. 고난 속에서도 살아남은 이유가 있습니다 (14~18절)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17절)
14절의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라는 고백은 출애굽기 15장 2절,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이 바닷가에서 불렀던 모세의 노래를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시인은 자신이 겪은 구원을 홍해의 구원에 잇대고 있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작은 건짐도 알고 보면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건지신 그 크신 하나님의 손길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의인들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고(15절), 권능을 베푸신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립니다.
그런데 시인은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넘기지 아니하셨도다"(18절). '경책'이란 잘못이나 죄를 깨닫고 돌이키도록 꾸짖는 것을 말합니다. 그가 당한 고난은 하나님의 훈계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심하게 징계하셨지만 죽음에 넘기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시인은 자신이 죽지 않고 살아난 이유를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선포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오늘 새벽에 살아 숨 쉬며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위기를 지나고도 살아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을 전하는 증인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 3. 버린 돌을 머릿돌 삼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19~29절)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22~23절)
구원을 경험한 시인은 이제 의의 문, 곧 성전 문으로 들어가 감사합니다(19~20절).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한 장면으로 요약합니다. 건축자들이 쓸모없다고 내다 버린 돌과 같았던 자신을, 하나님이 집 전체를 지탱하는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신약에서 예수님께 그대로 적용됩니다(막 12:10; 행 4:11; 엡 2:20). 사람들은 예수님을 쓸모없다고 버려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분을 온 인류 구원의 기초, 머릿돌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사람들이 상상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구원을 이루십니다.
25절의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는 히브리어로 '호쉬아 나', 우리가 잘 아는 '호산나'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던 종려주일에 무리가 외쳤던 그 환호가 바로 이 시편에서 나왔고, 초대교회도 이 시편을 종려주일에 불렀습니다. 시인은 마지막으로 밧줄로 절기 제물을 제단 뿔에 매듯(27절), 구원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붙들어 매야 한다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29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로 마칩니다. 여기 '인자하심'은 히브리어 '헤세드', 한 번 맺은 언약을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버린 돌 같은 나를 머릿돌 삼으신 그 헤세드가 오늘도 우리를 붙들고 있습니다.
■ 맺는 말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가르칩니다.
첫째, 사람이나 권력이 아니라 피난처 되시는 여호와께 온몸으로 피하십시오.
둘째, 고난을 지나고도 살아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선포하기 위함임을 기억하십시오.
셋째, 버린 돌을 머릿돌 삼으시는 하나님의 기이한 구원과 영원한 헤세드를 찬양하십시오.
오늘 하루, 에워싼 문제보다 크신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며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의 찬양 (추천)
1. 새찬송가 391장 「오 놀라운 구세주」 — 생명의삶 오늘의 찬송. 큰 바위 밑에 영혼을 숨긴다는 가사가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낫다"(8절)는 본문의 고백 그대로입니다.
2. 주의 도를 버리고
3. 시편 118편
■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1. 지금 나는 문제 앞에서 가장 먼저 누구에게(사람, 돈, 연줄, 하나님) 피하고 있습니까? 오늘 하나님께 온전히 옮겨 실어야 할 짐은 무엇입니까?
2. 내가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온 이유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선포하기 위함"이라고 고백합니까?
■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1. 더빛교회가 사람의 방법이 아니라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시고, 에워싼 어려움 앞에서도 구원의 기쁜 소리가 끊이지 않는 장막이 되게 하소서.
2. 세상이 버린 돌 같은 영혼들을 하나님이 머릿돌로 삼으시는 기이한 구원의 역사가 우리 교회의 전도와 다음 세대 가운데 나타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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