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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감동으로

주님의 일은 어디서부터 시작될까요?

학개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의 감동" 에서 시작됩니다.


70년 바벨론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우선시 했던 과업은 무너진 성전의 재건이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무너진 성전의 회복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가 있기에 1차로 포로에서 귀환한 이들에게 이것은 반드시 해내야 할 사명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들도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시작하고 얼마 안되서 중단이 되고 맙니다.

온갖 외부의 방해들로 중단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그리고 16년의 시간이 흘러버렸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학개서 1장 앞 절에서 하나님의 책망을 읽어보시면 짐작할 수 있을거에요)


잘은 모르겠지만,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때 그들의 마음은 꿈과 기대와 열정이 컸을 것이고,

이제는 새롭게 해보리라, 과거를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저마다 결단과 의지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무너진 저 성전을 빨리 재건하고 싶은 소원이 컸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나름 안락하고 익숙해진 바벨론에서의 생활을 버리고 1차로 귀환한 것 아니겠습니까.

한마디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도 믿음이 있는, 헌신된 사람들이었던 거에요.


그런데 16년이 지나도록, 그들은 돌 하나 제대로 쌓지 못한 것 같습니다.

무너져 버린 그 성전 터에 남아있던 폐기물들 하나 제대로 치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2절을 보면, 심지어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 때 할 일이 아니다" , "아직 시기가 아니다"


주님이 주신 소원이 남아있다해도, 저 마음 어딘가 한 구석에 희미하게 있었을 겁니다.

실패감, 죄책감, 낙심, 두려움 등의 온갖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과 함께 뒤엉켜서 말입니다.

찾을래야 잘 찾아지지도 않고, 찾았다한들 감히 말도 꺼내지 민망한.. 뭐 그런것들.. 아시죠..?


오래동안 굳어지고 무뎌지고 무감각해진 그 마음을 무엇이 움직일 수 있었겠습니까.

바벨론에서 힘차게 무리를 이끌고 돌아온 리더 스룹바벨도, 그를 도왔던 대제사장 여호수아도..

이 모든 상황을 역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해야한다는 의무감도, 성전에 대한 어떠한 지식도, 책임감, 열심.. 그 무엇도 작동하지 않습니다.

어떤 영적 한계에 갇혀 버린 것이지요.. 그 답답함도 잘 못 느낄 만큼..



대체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요?

과연 무엇이 이들을 다시 일어서서 주를 향해 달리게 할수 있을까요?

무엇이 이 무거운 상황을 역전시키고, 돌파하게 할 수 있을까요?

무엇이 이들의 부르심을 회복시키고, 사명적 존재로 새롭게 될 수 있을까요?


학개서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한번 볼까요?


학1:3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멘!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정답이 조금 싱겁나요? 그치만 여기서부터 정말 변화가 시작되요. 왜냐하면 진정한 변화는 우리 마음의 변화기 때문이지요)

드디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주여, 우리에게도 말씀으로 찾아와 주시옵소서!


학1:12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모든 백성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들었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그 말씀은 사실, 책망의 말씀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적나태함과 하나님나라의 무관심을 향한..

그러나 그들은 이 말씀을 "듣습니다". 스룹바벨, 여호수아를 포함한 모든 백성은 학개 선지자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 이전까지 '듣지 않았다, 청종하지 않았다, 목이 곧은 백성이다' 라는 혹평을 듣던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기를 거치며 돌아와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 것입니다.


학1:13 그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니라


놀라운 것은, "그 때에" =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한번 더 학개에게 임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됩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첫번째 말씀의 내용은 책망이었지만,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돌이킨 이스라엘 백성에게 연이어 주시는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는 시작인 것입니다. 아직 눈에 보여지는 성전은 돌 하나 제대로 놓지 못하였으나 주님은 이미 하나님의 임재를 약속하시며, 이미 그들 안에 거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의 축복이자, 능력이겠지요! 죄를 버리고 주님을 얻는!


이렇게 주님의 사전작업(?)이 끝나고,

이제 드디어 그들은 16년간 중단되었던 하나님의 전 공사를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14절)

이제 비로소 진짜 일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진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입니다. 주님이 받으시는..


맨 처음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봅니다.

주님의 일은 어디서부터 시작될까요? 이제 아시겠지요?

바로, 하나님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것에서부터.

그리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주신 성령님의 감동으로.

아멘!


학1:14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주여! 새벽마다, 예배마다 말씀을 듣고 보고 묵상할 때, 우리 마음을 성령으로 감동시키소서!

이미 우리 안에 심겨진 복음의 생명이, 우리의 막힌 모든 상황과 우리의 한계를 뚫고,

열매를 맺는데까지 자라가는 성령의 돌파를 올 한 해 허락하소서!

성령으로 시작하여, 매 순간 성령님과 동행하며, 끝까지 성령으로 마치는 우리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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