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하드(אחד) 올네이션스 운동
한 명의 크리스찬이 한 명의 유대인 전도
각 나라별 정오의 기도
샬롬, 어려운 시간 가운데 평안하신지요.
기도해 주심으로 인하여 에하드 올네이션스 운동이 여러 나라와 지역으로 계속 확산 되고 있습니다.
지난 21일에 뉴욕 브루클린 태버내클 교회를 방문하여 에하드 올네이션스 운동에 관하여 말씀 드리고 영상과 브로셔를 전달해 드렸습니다.
영국 기독교 방송국인 TBN UK에서 앞으로 방송을 통하여 유대인 전도에 함께 협력하기로 하였습니다.
에하드 올네이션스 운동 동영상 스페니쉬어 자막이 완성되어서 현재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아르헨티나,
스페인, 멕시코, 페루등으로 보내지고 있습니다.
다시한번 유대인 한 영혼 구원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직접 전도에 동참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김ㅇㅇ. 고에스더 선교사 올림 🌷
러시아
러시아의 유대인들은 7C 이후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인 코카서스 지역에 거주하였고, 14C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특권을 받아 서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일부로 이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차별과 박해를 받게 되었고 추방을 당하였습니다.
1772년 러시아의 유대인 인구가 극적으로 증가하였던 이유는 폴란드의 분할로 폴란드 지역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이 러시아령에 편입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살 수 있는 지역과 직업이 제한되었습니다. 19C에 유대인들이 러시아 사회에 동화되면서 대중적인 반유대주의와 포그롬(집단 학살)의 물결이 일어났습니다.
러시아의 첫번째 포그롬은 1881년 알렉산더 3세가 황제로 즉위하면서 유대인의 ⅓은 개종시키고 1/3은 추방시키고 1/3은 굶겨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두번째 포그롬은 1903-1906년, 세번째 포그롬은 1917-1921년에 일어나 약 7만명의 유대인들이 죽음을 당했고 포그롬을 피해 약 2백만명의 유대인들이 미국과 이스라엘로 대규모 이주하였습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의 주역이었던 레닌, 트로츠키등은 유대인이었습니다. 이들은 러시아 유대인의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유대인만의 특별 자치구를 만들기로 결정하였지만 레닌이 죽은 이후 실행은 소비에트의 당 서기장이 된 스탈린이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탈린은 오지 중의 오지인 시베리아 동쪽 중국 접경 지역인 비로비잔에 유대인 자치구역을 설정하고 자치를 허용하였고 당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중국에서 빼앗은 이 지역을 러시아화하기 위해 사회에서 배척받던 유대인들에게 이주를 권장했습니다. 스탈린의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1928년부터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무수한 유대인들이 혹사, 아사, 혹한에 죽어갔고 이주에 응하지 않은 유대인들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 러시아는 서방과 동맹관계를 맺고 독일에 대항하였고 유대인들은 전선에 나가고 군수 물자 생산 등 전쟁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므로 대전 전후 수년간은 러시아에서 반유태주의가 잠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이후 러시아 유대인을 진압하려는 캠페인이 재개되었습니다. 또한 스탈린 시대에는 냉전이 본격화된 시기였으므로 소위 “뿌리없는 세계인”으로 간주된 유대인을 권력 심장부에서 몰아내기 위해 “미제국주의자를 위한 간첩행위”란 죄목으로 유대계 공산당 지도자들을 숙청했습니다.
1949년부터는 유대인 종교행사, 관습을 금지시켰고 유대자치구인 비로비잔을 위시한 전 러시아 지역에서 아쉬케나지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이디쉬어 사용을 금지시켰습니다. 1948-1953년 유대인 문인, 배우, 음악인, 화가 등을 간첩행위로 처형하고 유대인을 국가 조직, 공산당 및 주요기관에서 모두 축출했습니다. 1953년 1월에는 국가 고위층을 독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유대계 의사 수 명을 체포하여 일부는 처형, 나머지는 시베리아로 유형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1953-1964년은 후르시쵸프 시대로 소련의 반유대주의가 잠시 중단된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미국 소련간 과학, 우주개발 경쟁이 치열했으므로 우수한 유대인 두뇌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공산당 핵심 부서를 제외한 비정치성 국가 기관에 유대인이 재등용되었습니다. 또한 많은 유대인 경제학자들을 중용하여 탈 스탈린식 경제개발 계획을 추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 “시온주의는 소련의 적”이라는 새로운 논리가 확산되면서 많은 반유대 서적이 출간되고 유대인의 선민 논리나 탈무드를 해악으로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고르바초프 시대에는 개혁 중심 세력중 유대인 석학이 많이 포진되어 있었지만 90년대 초 소련의 공산체제 붕괴로 민족주의가 재현되면서 소련의 반유대주의는 본격화되었으며 ‘파미얏’과 같은 조직적인 반유대 단체가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많은 유대인들은 “Refuseniks”로 알려진 유대인 활동에 참여했다가 투옥되어 소련을 떠날 권리를 박탈당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서방 국가에서 “Let My People Go”라는 슬로건 아래 시위가 열렸고 소련 당국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정부와 의회가 로비를 벌였습니다. 이후 소련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10년이 지나자 유대인에 대한 대부분의 제한이 해제되었습니다. 이때 많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과 미국으로 떠나면서 러시아의 유대인 인구가 감소했습니다.
현재 러시아 유대인은 약 17만명 정도 남아 있습니다. 이들 중 절반은 모스크바에 살고 있으며 10%는 세인트 피터스버그, 그리고 나머지는 카잔, 로스토프온돈, 노보시비르스크, 사마라, 페름, 하바로브느크, 그리고 날칙 등에 살고 있습니다.
기도제목
1. 많은 역사의 아픔을 겪었던 러시아의 유대인들이 참 위로자되시고 메시야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2. 에하드 올네이션스 영어 영상이 러시아로 전달된 가운데 현재 러시아어 자막 영상이 제작되고 있습니다. 이 영상이 완성되어 러시아의 복음주의 방송국, 신학교, 교회들에 잘 전달되고 성령님이 일하시도록.
3. 미국내 러시안 유대인 약 60만과 이스라엘 내 러시안 유대인 약 180만을 향한 전도의 불길이 일어나도록 기도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로마서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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