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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더빛교회

[선교소식] 에하드 올네이셔스 운동(독일)

에하드(אחד) 올네이션스 운동

한 명의 크리스찬이 한 명의 유대인 전도

각 나라별 정오의 기도



샬롬

주님의 이름으로 인사 드립니다.


최근에 저희 지역에 살고있는 이스라엘 출신 Z 와 자주 만나서 교제하는 가운데 조금씩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Z 는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를 졸업하고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와서 현재 이스라엘 스타트 업 회사들의 미국 진출을 돕는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Z 의 마음을 찾아가 주셔서 예수님께서 메시야이심을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다시한번 유대인 한 영혼 구원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전도에 동참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김ㅇㅇ. 고에스더 선교사 올림🌷

 
독일

독일의 유대인 정착은 4C부터 시작되었으며 여러 세기에 걸쳐 계속 증가하여 번영하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1096년 제 1차 십자군을 시작으로 독일의 유대인들은 심한 박해, 학살 및 추방을 겪었습니다. 1349년 독일의 유대인들은 유럽 전역의 유대인들과 함께 ‘흑사병’ 전염병을 일으킨 혐의를 받고 죽임당했습니다.


17C부터 유대인들에 대한 상황이 개선되었고 19C에는 유대인들이 법적으로도 지위가 향상되어 이 시기에 유대 사상에 깊은 영향을 미친 ‘유대인 계몽주의’의 기초를 놓았고 유대주의의 보수, 개혁, 자유주의 종교 운동이 독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약 만 이천명의 유대인들이 독일을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었습니다. 1차 대전 이후 유대인은 독일 제국의 잿더미에서 생겨난 바이마르 공화국의 건국자들로 대표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바이마르 시대를 독일 유대인의 황금기라고 여깁니다.


1933년 나치당의 권력이 떠오르면서 독일에 살고 있던 50여만명의 유대인들은 독일 사회에서 급속히 배제되었고 유대인 소유 기업은 보이콧 당했습니다. 1935년부터 유대인들은 독일 시민권을 박탈당했으며 독일 사람과 결혼하는 것도 금지되었습니다. 1938년까지 독일 사회의 모든 측면에서 사실상 유대인들을 배제하였고 유대적 이름이 아닌 유대인들 이름에 남자는 ‘이스라엘’, 여자는 ‘사라’를 추가해야 했고 유대인 여권에는 ‘J’가 찍혀 있었습니다.


1938년 11월 9일 밤은 “Kristallnacht (깨진 유리의 밤)”으로 알려졌고 독일 전역의 267개의 회당이 파괴되었고 유대인 가정과 사업체가 약탈당하였습니다. 1938년 유대인들의 이민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지만 프랑스에서 에비앙 회의(32개 국가 대표단과 구호 단체 대표가 에비앙에 모여 독일 유대인 난민에 대해 논의)가 열렸으나 대부분의 국가들이 추가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에 반대함으로 다른 국가로의 이민이 어려웠습니다. 1941년 10월부터 유대인들은 독일에서 폴란드와 벨로루시, 발트해 연안 국가의 게토로 추방되었고 1942년 10월 말 이후 독일에 남아 있던 유대인들은 아우슈비츠, 테레 지엔 슈타트로 추방되었습니다. 홀로코스트에서 약 18만명의 독일 유대인들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의 짐을 진 독일은 종전 후 서독의 아데나워 수상 시기에 유대인과의 화해를 시발로 홀로코스트에 대한 부채를 청산하려는 노력을 보였습니다. 1962년에는 독일, 이스라엘간 외교관계가 수립되고 1972년 브란트 서독수상이 이스라엘을 공식 방문하여 이스라엘 의회에서 홀로코스트에 대해 정식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동독은 설립된 1949년부터 붕괴된 1990년까지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고 홀로코스트에 대한 국민의 도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또한 아랍 국가와 테러 조직에 군사 지원을 제공하였습니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대부분의 독일 유대인은 해외에 머물렀고 소수만이 독일로 돌아왔습니다. 그 이후 독일의 유대인 공동체가 재건되었지만 동유럽 난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1990년부터 19만명의 유대인들이 구소련 국가에서 온 “Quato Refugees (할당량 난민)”으로 독일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들 중 8만명은 독일의 유대인 공동체에 통합되어 지금도 독일 유대인의 절반 이상이 현재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합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70년이 넘은 현재 독일 사회는 나치의 과거와 맞서고 대처할 수 있도록 열려있어 홀로코스트 거부는 불법이며 엄격한 징역형에 처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동부 독일에서 극우 단체와 조직이 증가하며 반유대주의 사건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현재 독일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전쟁 이전의 원래 후손이 아니라 전쟁 이후 구소련과 동유럽 유대인의 자손이거나 최근에 이스라엘에서 도착한 사람들입니다.

독일의 유대인 공동체는 약 10만 명이며 베를린, 뮌헨, 프랑크푸르트에 큰 공동체가 있으며 독일 전역에 100여개의 중소 유대인 공동체가 흩어져 있습니다.



기도제목

1. 독일의 기독교인들이 반유대주의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유대인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2. 에하드 올네이션스 동영상이 독일 복음주의 교단과 교회들에 보내지고 있는 가운데 성령님께서 역사하심으로 유대인들이 메시야되신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3. 프랑크푸르트 중심으로 정오의 기도가 시작된 가운데 앞으로 더 많은 독일 기독교인들이 기도에 동참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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