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지 형제
2017년부터 우리 가정의 기도제목은 ‘자녀, 동생을 허락해 주세요’ 였습니다. 매해 송구영신 예배마다 때가 되면 주실 거라는 믿음과 올해도 안 주셨네 라는 실망이 혼재했습니다.
2019년 송구영신예배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병원까지 갔었고 12월에 혹시 임신하게 아닐까 하고 테스트를 해봤기에 실망과 함께 막연한 믿음으로 기도카드를 작성했습니다.
2019년 첫날부터 창세기 말씀을 보았습니다. 1월 7일은 창세기 17장 말씀이었습니다.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하시며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셨고, 또 아들을 주신다는 약속과 함께 그 이름을 이삭이라고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과 믿음의 조상에 관한 이야기라고 여겼었는데 이날은 뭔가 다른 느낌이 들면서 우리 가정에게, 아니 내게 하시는 말씀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하나님은 우리 가정에 아이를 허락하셨습니다.
임신 소식을 듣자마자 1월 7일 그날 그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아이를 주셨다는 감사함보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라는 말씀이 먼저 생각났습니다. 아~ 아브라함에게만 하신 약속이 아니라 나에게도 말씀하신 약속이었구나 라고 느껴졌습니다. 은혜였습니다. 나는 아브람처럼 하나님 뜻을 따르지도 결단하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약속해주시고 복을 주시는구나 라구요.
아들인지 딸인지도 몰랐고 가족과의 상의 없이 태명은 이삭이라고 정했습니다. 이삭의 뜻은 웃음이었지만 그의 삶은 순종이었습니다. 그 아비인 내게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웃음이 되고 순종하라는 것이구나 라고 느껴졌습니다.
이삭이의 이름은 '도훈'으로 하였습니다. 한자는 기뻐할 도(慆), 공로 훈(勳)-항렬 돌림자를 씁니다.
도(慆)자는 심장을 뜻하는 '심방 변'에 '퍼낼 요'자가 합쳐진 형성글자인데, 본디 뜻은 마음에 근심이 없어 매우 기쁘다(그 기쁨을 절제할 수 없어 오래간다는 의미도 있음) 입니다. 동시에 오만하다, 방자하다는 뜻도 지니고 있습니다. 제가 기도하면서 받은 뜻은 마음의 죄를 퍼내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더할나위 없이 기뻐하시지만 그렇지 않으면 죄에 빠져 되려 하나님께 오만, 방자하게 범죄할 수도 있다는 의미 였습니다.
또, 마음을 뜻하는 심방변이 있다는 것은 심장에서 피가 나옴이요 이는 곧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예수님의 보혈이 있기 때문이기에, 그로 인해 살아가며 기뻐할 수 있다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마음의 기쁨은 곧 기쁨의 순종이 되고 이는 곳 하나님의 웃음이 됩니다.
태명인 이삭(Issac)은 아시듯이 '웃음'이라는 뜻인데 이는 하나님의 뜻을 기쁨으로 순종하였기 때문 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순종의 기쁨은 곧 예수님의 공로(공 훈(勳))임을 믿습니다.
도훈이는 저희 가문의 첫 번째 아들 입니다. 몇 대에 걸친 믿음의 가문이라고 하나 할아버지의 소천 이후 어느 순간부터는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는 분위기였습니다. 가문의 첫아들인 도훈이를 통해 어쩌면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통해 가문의 신앙을 이어 가시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한동대를 보내시고 아내를 만나게 하여 다시금 믿음의 길로 진입하게 하셨고 ‘양말 하나까지 준비하신다’는 약속으로 라온이를 주시고 적절한 시기에 이직과 함께 교회를 옮기게 하시면서 하나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이끄심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다음 세대인 라온이를 날 때부터 하나님의 방법으로 키우고 계시고 도훈이도 그리 하실테지요. 아브라함이 그 아비를 떠나 하나님을 따랐던 것처럼 저에게도 이제부터는 전능하신 하나님만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자녀를 받았다는 감사함에 그치지 말고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도훈이에게 약속의 징표를 주신 것 입니다. 창세기 17장에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의 징표로 할례를 주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징표를 볼 때마다 도훈이를 주시고 지금까지 지켜 주신 것과 함께 저와 저희 가정이 하나님만 의지할 수 밖에 없음을 항상 기억하게 됩니다. 나만 의지하고 살아가는 죄인인 제게는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오늘 도훈이는 아비와 어미의 신앙 고백으로 유아세례를 받습니다. 믿음의 증거로 보내주신 도훈이가 죄를 끊임없이 퍼내어 그 분의 뜻에 따라 순종하며 거룩하게 살아가면서 주님의 웃음이 되기를, 양육하는 부모로서 기도하고자 합니다.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올려 드린 그 마음으로 도훈이를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주님, 부족한 저의 작은 순종을 받아 주시길 기도합니다.
송지은 자매
우선 자격 없는 죄인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 삼아 주시고 심지어 하나님 자녀 삼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보내주신 자녀의 유아 세례를 통해 이 사실을 다시 한번 믿고 바라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고난 주간 큐티를 하며 가룟 유다와 베드로가 마음에 많이 남았습니다. 둘 다 예수님의 제자였으나 배신했던 그들의 끝은 아예 달랐습니다. 예전엔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 넘기는 큰 죄를 지었으니 그렇게 될 만도 하지 하고 생각했지만, 예배와 말씀을 통해 회개에 대해 아주 조금씩 알아가는 요즘 그 둘의 차이는 딱 하나 ‘회개’임을 압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내가 해결하려는 자와 내가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예수님께 나아가는 자.
첫 아이를 주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양말 한 짝까지도 준비해두셨다 약속하셨고, 결혼하면서 주셨던 말씀도 시127(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편 이었음에도 하나님의 뜻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입술로는 하나님이 자녀를 허락하셨다 말하면서도 자녀를 나의 소유, 내가 책임지고 노력하여 키워내야 하는 과제 또는 결과물이라 여기며 양육해 왔습니다.
그 결과는 자녀를 노엽게 하기(엡6:4, 골3:21) 일쑤였고, 주의 말씀과 교훈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죄의 길을 가르치며 아이를 낙심하게 하고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자녀를 아프게 하고 내가 살고자 죽이는 자리로 달려가면서도 그러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없던 나병환자와 같던 나로부터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자녀를 지키시고 길러 주셨습니다.
그 아이를 통해 지금은 얼마나 내가 죄인인지 찬찬히 알려주심에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또 알려주신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 나의 방식과 나의 말로 노력해봤자 절대로 해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끝이 죽음인 것을 큐티를 통해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 밤에 대제사장이 아니라 예수님께 가서 잘못했다고 엉엉 울었다면 그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지, 하나님은 가룟 유다도 너무 사랑하셔서 기회를 주셨는데도 예수님 없이 ‘내가, 내가’ 책임지고 해결하려 했던 그 끝이 죽음임을 봅니다.
둘째를 원했지만 5년 동안 내 힘으로 생명을 잉태할 수도 변화시킬 수도 없음을 철저하게 알려주시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드리며 정말로 하나님 나라 위해 살고 싶다 소원할 때 놀랍게 일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며 이 아이는 정말로 내 아이가 아닙니다 주님의 아이입니다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죄와 싸우지 않았기에 둘째 아이를 키우면서도 여전히 저는 하나님이 주셨으니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자녀를 잘 키워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의지하는 순간들은 늘었지만, 내 중심은 여전히 ‘내가’ 결정하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마침 양육 중 가장 힘든 시기에 코로나 때문에 누구도 만나지 못하고, 예배도 가정에서 온라인으로 드리고, 유치원도 멈춘 상태에서 집 안에서 죄의 결과들을 오롯이 직면하며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고 있던 중에 ‘가정을 세워야 한다, 자녀를 맡기는 것이 아닌 부모가 책임져야 한다’ 등의 메시지에 너무나 공감하고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생각하면서 그 의미를 또 ‘나’로 받아들여 ‘나’로 해결하려 했습니다. 가정을 세우려면 부모의 책임이니까 힘들어도 힘든 건 당연한거야 내가 견뎌야해 내가 해결해야해 내가 책임져야해 하면서 말입니다.
사실은 아이 밥을 먹이는 것조차 내 힘으로 내 방법대로 할 수 없으면서도 잘해내야 한다는 스스로 세워 둔 기준 속에 갇혀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자존 안에 버티고 버티며 지냈습니다. 결국 주님은 제 입술에서 ‘저 좀 도와주세요’라는 말이 터져 나오게 하셨습니다. 누군가에게 심지어 예수님께도 도와 달라 말하지 못하고, 상대가 먼저 알아주기 바라고, 누군가에게 피해주면 안되고, 오히려 내가 도와 줘야지 도움을 받는 건 아니다, 내가 해결해 내야 한다 생각하며 살아오던 제가 선생님들께 ‘저 좀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라고 말한 순간은 사실 주님 앞에서 ‘주님 저 정말 못해요 안되요 저 도움 필요한 자에요’ 하던 순간이었습니다. 그전에도 저는 못해요 라고 말했지만 그건 솔직히 저 못하겠어요 하기 싫어요 였지, 주님이 필요해요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두 아이들을 통해 내가 얼마나 할 수 없는 자인지, 얼마나 잘못만 저지르고 실수만 하고, 나아가 다른 영혼을 예수님께로 갈 수 없게 방해하는 자인지 알려주시고, 그래서 정말로 나는 도움과 치료의 손길이 필요한 자인지 예수님이 필요한 자인지 알려주셨습니다.
내 영혼이 병든 자 인지 조차 알지 못하던 저에게 두 자녀를 통해 병든 자, 외로운 자, 도움이 필요한 자, 가난한 자 임을 알려주시고, 이런 비천한 자에게 예수님의 옷을 입혀 주시며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시며 그 나라 향해 함께 가자 해주시는 하나님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제 마음은 가시덤불이 가득해서 남편과 아이들을 피 흘리게 하고 그들의 영혼을 상하고 죽이며 심지어는 방해하는 자리에 가곤 하지만, 이제는 그 때마다 베드로처럼 예수님 앞에 가서 엉엉 울고, 손잡아 주시고 용서해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구할 것입니다. 자녀를 조금 더 잘 기르고 잘 되었으면 해서 말씀을 듣고 암송하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구원받고 살기 위해 말씀을 붙잡겠습니다. 아직도 죄와 싸우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이지만,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것 또한 하게 하실 것을 믿고 가겠습니다. 그런 엄마를 보고 예수님을 생명줄로 붙잡는 아이들로 자라날 수 있도록 살아가겠습니다. 주님의 소유인 자녀들에게 나를 휘두르며 노엽게 하지 않고 나에게 전혀 없는 사랑을, 사랑 자체이신 예수님을 찾고 찾으며 하루하루 살겠습니다.
예수님 저에게 찾아와 주시고, 도와주세요.
오랜 기도의 결과로 주신 하나님의 기업인 도훈이, 그리고 말씀으로 받는 아버지의 간증이 감사합니다. 어떤 "도"훈이 되느냐는 일단 부모님께 달려 있겠지요. 날마다 주 안에 거하는 가정이 되길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이 도훈이가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라기를 함께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