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금송아지를 없애라

왜 금송아지를 만드는가?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32:1)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가 더디 왔기 때문이다. 모세가 당장 없다고 결론 내리고 그래서 인도할 신이 없다고 결론 내린다.

기다리지 못해서... 나름대로의 결론에 이르고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나름대로의 결론이란 바로 우리의 성격 안에 있는 자동적 패턴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의로, 누군가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 속에서, 누군가는 스스로의 생각에 의해서, 누군가는 자존심으로 똑같은 결론에 이른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내가 하자!!


인내, 성경에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덕목이다.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인도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만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것밖에 없는 세상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고 바로 이것이 믿음이다.

말씀을 기억하고 그것을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이 곧 우리의 최고의 하나님께 대한 반응이다.


눅 21: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롬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히 12:1,2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한번 만들어진 금송아지는 부수기 어렵다

모세는 이 참담한 현장에서 그들로 스스로 열심히 만든 그 금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사르고 가루를 만들어 마시게 하였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금송아지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부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때 우리는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 같은 자기부인의 과정을 밟게 된다. 가져오고 끝이 아니다. 불사르고 끝이 아니다. 가루를 만들어도 끝이 아니다. 아예 먹어서 내 안에 깊이 물든 우상숭배를 인식하고 회개해야 한다.


이제 끝인가? 아니다. 다시는 금송아지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공동체가 함께 깨어있어야 한다.

모세는 아론에게 묻는다.

"이 백성이 어떻게 하였기에 당신이 그들을 큰 죄에 빠지게 하였느냐?"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는가? 무엇이, 누가 우리를 속여서 큰 죄에 빠지도록 놔두고 있었는가?


아론은 변명으로 일관한다. 백성의 악함 때문이다.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한 사람이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을 모았을 뿐인데 불에서 송아지가 나왔다.

우리는 사람과 상황을 탓하며 나의 잘못을 피하고 싶다. 이해도 된다. 그럴만한 상황, 그럴만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렇게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겠는가?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케 하는 그들의 말에 잠시 흔들렸을 뿐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안 느껴져서 그랬다. 그래서 잠시 한눈 팔았는데 우연히, 기적적으로 금송아지가 나왔다.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이런 의도를 가진 게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겠는가?


하나님 앞에 서라

비록 지금까지 금송아지를 섬기며 살았더라도 이제는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무관심과 방심 속에서 내 안에, 우리 가족 안에, 우리 교회 안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생각과 마음, 그리고 그 대적의 조롱과 참소에 머무르겠는가?

이제 일어나서 주님 편에 서서 말씀의 검으로 나를 쪼개고 검사하여 새롭게 하실 주님을 기대하지 않겠는가?


히 4:12-16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과 및 관절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고 우리와 똑같은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을 붙잡자!!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죄를 불태우고 썩을 육체를 드려 말씀과 성령으로 새롭게 함을 받자!

조회수 106회댓글 0개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