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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받는 하나님 나라


사무엘상에 나오는 다윗은 하나님께서 택하여 세우신 하나님나라의 왕이다. 그렇기에 다윗은 진정한 왕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며, 그를 통해 세워지는 다윗왕국은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고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그림자와 같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무엘상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세워가시는가를 유심히 보며 오늘 우리에게 적용시킬 수 있어야 한다.


끊임없이 공격받는 하나님 나라

우리가 지난 한 주, 사무엘상을 통해서 본 것처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는 끊임없는 공격을 받는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땅에 하나님나라가 침투해 들어왔지만, 이 땅에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이 세상의 왕 "사단"은 하나님께서 왕 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지는 것을 결코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래서 이 땅에서는 피할 수 없는 두 나라간의 충돌이 벌어진다. 이것을 우리는 '영적 전쟁'이라고 한다.


이 영적전쟁이 사무엘상에서는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바로 '다윗' 을 가운데 두고, 사울과 요나단의 대결구도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 쪽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모든 기회와 방법과 군대를 동원하고 있고, 다른 한 쪽은 이러한 다윗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생명을 걸고 이 전쟁에 임하고 있다. 이는 사울과 요나단의 이야기요, 사단의 편에 선 자와 하나님의 편에 선 자의 이야기다. 과연 하나님의 나라는, 다윗은 무사할 것인가? 사울은(사단은) 자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요나단은 이 어마무시한 사단의 권세와 힘,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되는 혈연을 과감히 끊어내고 끝까지 하나님 편에 서서 다윗을, 하나님 나라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사무엘상의 절반 이상의 이야기가 사울의 이야기라는 사실은 참 흥미롭다. 어찌보면 그렇게 비중있게 다루지 않아도 되는 실패한 인물이요, 하나님께서 버리신 인물인데 사무엘상은 사울의 이야기를 상당히 비중있게 다룬다. 그것은 분명 우리에게 이 사울을 통해 하고 싶은 하나님의 음성이 있다는 뜻이다. 첫번째는 사울의 실패와 그의 인격 속에서 우리 안에 있는 사울과 같은 모습을 발견하고, 그것이 곧 망할 길임을 깨닫고 돌이키라는 회개의 메시지일 것이요, 두 번째는 사울로 대표되는 사단의 권세가 어떻게 다윗을 죽이려 하고, 하나님 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쉬지않고 애쓰고 힘쓰는가를 보며, 이 땅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사울과의 전쟁 앞에 깨어있으라는 메시지일 것이다.


실제로 사울이 얼마나 지독하게 다윗을 괴롭히고 죽이려 하는가. 그 안에 있는 영은 참으로 죽이는 영이요, 그것이 바로 사단의 정체인 것이다.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받고 사단에게 완전히 지배당하였고, 그런 사울의 일생일대의 남은 목적은 딱 하나, 바로 자신의 나라를 위협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왕 '다윗'을 죽이는 것이었다.


삼상18:10-11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그가 집 안에서 정신 없이 떠들어대므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그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사울이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의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삼상18:17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맏딸 메랍을 네게 아내로 주리니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용기를 내어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라 하니 이는 그가 생각하기를 내 손을 그에게 대지 않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을 그에게 대게 하리라 함이라


삼상18:25

사울이 이르되 너희는 다윗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왕이 아무 것도 원하지 아니하고 다만 왕의 원수의 보복으로 블레셋 사람들의 포피 백 개를 원하신다 하라 하였으니 이는 사울의 생각에 다윗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죽게 하리라 함이라


삼상19:10-11

사울이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 하였으나 그는 사울의 앞을 피하고 사울의 창은 벽에 박힌지라 다윗이 그 밤에 도피하매 사울이 전령들을 다윗의 집에 보내어 그를 지키다가 아침에 그를 죽이게 하려 한지라


삼상19:15

사울이 또 전령들을 보내어 다윗을 보라 하며 이르되 그를 침상째 내게로 들고 오라 내가 그를 죽이리라


삼상20:31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사람을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 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이니라 한지라


이처럼 하나님께 버림받으면 우리는 사단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된다. 오늘 우리는 누구의 통치를 받을 것인가 선택해야 한다. 사단의 통치를 받으며 사울과 같이 비참하게 자기도 죽이고 남도 죽이는 그리고 결국 사단에게도 버림받는 인생이 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굴복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복되고 영광스러운 인생으로 살 것인가. 사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한 가지 절대 가지 말아야 할 분명한 길(죄와 사망의 길)을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울을 통한 사단의 거센 공격. 골리앗을 이긴 다윗마저도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다. 분명 먼 훗날, 하나님의 나라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릴 왕으로서의 부르심과 기름부으심이 있는 다윗이지만, 지금 다윗은 홀로 이 싸움을 감당할 수 없다. 버겁고 무겁다. 한 나라의 왕이 그의 모든 권력과 군대를 동원하여 다윗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이 상황에서 다윗은 사무엘을 찾아 피하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마음의 진정이 되지 않았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나라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 오늘 하나님 나라가 위협받고 있다면, 하나님의 교회과 하나님이 세우신 리더가 사단의 거센공격에 위협을 받고 있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다윗에게는 요나단이 있었다

하나님의 전쟁에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는 그저 믿음으로 하나님의 편에 선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사울의 거센 공격, 사단의 죽일듯한 기세 앞에 불안하고 두려워하며 흔들리는 다윗을 옆에서 붙잡아주고 이 싸움의 전면에 나설 그 하나님의 그 한 사람은 바로 사울의 아들 '요나단' 이었다.


물론 그에게도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신뢰와 어느정도 인간적인 믿음이 있었다. '우리 아버지가 설마 거기까지 하실까' 하는 의구심도 그 안에 있었다. 하지만 다윗의 말을 깊이 경청하며, 그가 하는 말이 사실인지 신중하게 확인하고, 만약 사실이라면 이것은 하나님나라와 직결되어 있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자신이 목숨을 걸고 아버지와 싸워서라도 막아내야 하고 지켜내야 하는 문제임을 인식했다. 한 나라의 왕자였지만, 그에게는 자신의 안위, 자신의 위치,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될 자신의 운명과 권리 등은 전혀 안중에도 없었다. 그의 관심은 오직 하나. 다윗을 통해 세워질 하나님나라가 전부였다. 거기에 자신의 전부를 걸었다. 목숨까지도. 그는 죄와 사단에 대한 거룩한 분노로 자신이 싸워야 할 자리에 믿음으로 서서 하나님나라의 전쟁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런 요나단을 통해 하나님은 다윗을 사울로부터, 사단의 계략과 위협으로부터 건지셨다.


마10:34-39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만약 요나단이 싸우지 않았더라면

만약, 요나단이 다윗이 겪고 있는 죽음의 위협과 자신의 아버지의 죄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님의 눈과 귀로 바라보고 듣지 않았다면? 자신의 생각으로, 인본주의적 관점으로 '에이 아버지가 그렇게까지 하지 않을거야 절대' 라고 자신의 생각을 신뢰하며 나이브하게 문제를 인식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눈으로 분별하지 못했다면? 다윗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나님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오늘 우리는 어떠한가?우리는 다 본성적으로 싸움을 싫어하고 편하고 싶어하고 안주하고 싶어하고 적당히 하고 싶어한다. 문제를 직면하기 보다는 덮어놓고 내 마음이 편한 것을 선호하고 그 거짓 속에 살아가는 것을 더 원하기까지 한다. 하나님 나라가 공격받고 무너져가고 있어도 이것이 나의 일로 여기며, 긴박한 마음으로 그 자리에 뛰어들어 이 거센 사울의 공격 앞에 서려 하지 않는다.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는 쉬고 싶어도, 우리는 쉴 수 있어도, 적당히 타협하며 지낼 수 있어도 영적 존재인 사단은 쉴 줄 모른다는 사실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모든 풍요를 누리던 그 때에도 사단은 어김없이 찾아와서 그들을 무너뜨리고 에덴의 복락을 빼앗아 하나님 나라 질서를 무너뜨렸다. 그 뱀이 지금도 쉬지 않고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기 위해 사울과 같이 혈안되어 활동 중에 있다.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도, 사단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바리새인들과 종교지도자들, 로마군인들 안에서 역사하며 예수님을 끝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지 않았는가. 그 사단이 아직 이 땅에서 활동중이며, 오늘도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이 시대의 다윗을 죽이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계12:13-15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다윗을 가운데 두고 싸우는 사울과 요나단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나라를 세워간다는 것이 단순히 말로, 우리의 지식과 노력, 열심 정도로 결코 되지 않는다는 절박한 영적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전쟁이며, 사단이 저토록 혈안이 되어 죽일듯 덤비는 만큼 오늘 우리도 우리의 생명을 걸고 전부를 걸어 이 싸움에 뛰어들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요나단도 결국 죽임을 당하듯, 예수님도 결국 죽임을 당하셨듯, 하나님의 나라는 누군가의 피흘림 위해 세워지는 것이며, 오늘 우리 더빛교회도 앞선 목사님의 처절한 피흘림 가운데 여기까지 세워질 수 있었던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요나단이 되어 다윗(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서기까지 '내가 피흘리며 죽기까지 싸우겠나이다, 내가 십자가를 지고 가겠나이다' 하는 일사각오로 매일의 전투에 임해야 할 때인 것이다.


'나는 못해요' , '잘 모르겠어요', '잘할 자신이 없어요' 와 같은 소극적이고 두려움에 붙들린 사람은 싸움터에 나설 수 없다. 매번 뒷걸음칠 궁리만 할 뿐이다. 그러나 왕의 명령 앞에 뒷걸음칠 치는 것도 영적으로는 무례한 것이요, 악한 것라고 전도서는 말한다.


전8:2-3

내가 권하노라 왕의 명령을 지키라 이미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였음이니라 왕 앞에서 물러가기를 급하게 하지 말며 악한 것을 일삼지 말라 왕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을 다 행함이니라


오늘 나 자신이 '요나단'과 같이 하나님의 전쟁에 뛰어드는 한 사람이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께서 나의 눈을 뜨게 해 주셔서 오늘 이 교회를 무너뜨리려 하는, 우리의 다윗을 무너뜨리려 하는 사단의 공격에 깨어있게 하시고, 왕이 명령하시거든 물러가지 않고 무기를 들고 나아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사단의 권세를 깨부수고 승리하는 주님의 군사로 써 주시옵소서! 이를 위해 성령의 충만을 부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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