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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묵상Day2] 후회에서 회개로.

가롯유다는 자기욕심에 눈이 멀어 은30에 예수님을 팔아버렸다.

그러나 그에게도 돌이킬 수 있는 기회는 있었다. 마태는 가롯유다에게 그 기회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마27:3-4)


예수님의 불의한 재판의 과정을 지켜보며, 거짓증거와 모함으로 예수님을 죽이려 하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모습을 보며 그는 깨닫게 되었다. '아,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죄 없는 저 분을 내가 은30에 팔아넘기다니. 내가 죄를 범하였다'


그는 은30은 돌려주었지만, 끝내 예수님께로 가지는 못했다. 그의 선택은 자신의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사단의 거짓에 속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었다.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마27:5)

후회는 했지만, 회개에는 이르지 못한 가롯유다.


이것이 고난주간에 두번째로 우리에게 던져진 묵상이다.

 

성경에서 나와 가장 비슷하게 여겨지는 인물을 한 명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사울' 이라 말한다.

바울되기 전 사울 말고, 구약에 나오는 '사울 왕'.

사실 '이것이 나구나' 라고 인정하기까지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원래 내 스스로를 모세, 바울, 엘리야, 다윗 같은 사람이라고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내가 내 스스로를 '사울 왕' 과 같다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울의 죄를 사무엘을 통해 드러내셨을 때 그의 반응 때문이었다. 그 반응이 내 속에 있는 마음과 너무나 같았기 때문이다.


삼상15:26-30

2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27 사무엘이 가려고 돌아설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28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이29 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

30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자신의 죄가 하나님의 눈에 발각되었음에도 그의 반응은 무엇이었는가?

사울은 사무엘의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졌다. 마치 사무엘이 자신을 구원해주기라도 할 것처럼..

그러나 사울의 이 문제를 드러내신 분은 누구인가? 지금 사울이 발각된 것은 하나님의 눈인가, 사무엘의 눈인가?


그가 사무엘의 옷자락을 붙잡고 한 말은 더 가관이다.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나를 내 백성들과 장로들 앞에서 높여주소서"

"내가 그리하면 돌아가서 당신의 하나님께 경배하겠나이다"


어느새 사울에게 하나님은 사라지고 없었고, 그 자리를 온갖 정욕과 세상 것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가 스스로 작은 자로 여길 때 하나님이 그를 귀히 여기시고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세워주시며 축복하셨지만, 그 자신이 하나님 앞에 마음을 찢으며 온전히 회개한 적이 없었기에 회개하지 않은 심령에 임한 하나님의 외적 축복들은 오히려 그에게 독이 되었다. 그의 열등감은 우월감으로,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상처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들마저 자기 것으로 취하는, 추악한 집착들로 변질시켜 버렸다.


사울의 이 모습.. 내가 정말 딱 이랬다.

내 죄가 드러나기 시작했을 때.. 하나님의 눈에 내 죄가 발각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사울왕과 똑같이 반응했다. 죄가 찔려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가슴을 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잃어버리게 될 것들을 먼저 생각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실까가 아니라,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그것을 훨씬 많이 생각했다. 죄가 드러나도 내 마음은 여전히 '리더의 자리' 에 있고 싶었고, 내가 생각하는 나의 거짓자아를 버리지 못해 집착하면서 정말로 내 속에서는 '내가 비록 범죄하였을지라도, 나를 사람들 사이에서 높여주세요' 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사람들 있는 곳에서 책망을 들으면 화를 냈고, 나의 문제를 오픈해야 하는 자리가 있다면 어떻게든 피하려고 했다.


내가 잘못한 것은 알았다.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도 어느정도 인정했다. 내 안에 정욕이 있다는 것도 인정되고, 내가 그토록 정죄하고 권면하던 친구, 후배들의 그 모습이 바로 나라는 것도 알았지만.. 나는 여전히 '나' 를 포기할 수 없었다. 교회 안에서의 자리, 위치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나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져야 할 판에, 나도 사람의 옷자락을 붙들고 늘어졌다. '나좀 알아주세요, 나 좀 봐주세요. 나 좀 괜찮다고 해주세요. 그래도 내가 리더라고 이야기해주세요'


시간은 흘러갔다. 그러나 나의 죄는 또 다시 반복, 또 반복. 여전히 제자리였다.

주변의 권유로 기도원도 몇 번이나 다녀왔다. 그래도 안되었다. 기도도, 회개도 안되었다.

한동대교회에서 홀로 버스타고 택시타고 포항 시골 구석에 있는 기도원도 찾아가봤다.

밤새 기도하려고 추운 기도원에 혼자 앉아, 꾸벅꾸벅 조시는 할머니 기도원장님의 기도소리를 들으며 기도하려고 안간힘도 써보았다. 그것도 안되었다.


어느 날, 집에 갔는데.. 예전에 비해 어두워진 내 표정을 보며 믿지 않으시는 어머니께서 한마디 하신다.

"너 이제 힘들지? 예전처럼 행복해 보이지 않네. 이제 적당히 믿고 너도 네 미래를 위해 직장 알아봐"

평소였으면 화를 엄청 냈었을텐데, 그 날은 유독 그 말이 너무 귀에 잘 들려서 어머니께 대답했다.

"네. 안그래도 이번 여름수양회만 다녀와 보고 별 일 없으면 그렇게 하려고요"


그리고 나서 참석한 여름수양회 (2014년..)

나는 정말 간절히 하나님만 찾았다. 이번이 아니면 안된다는 절박함, 절실함으로..

앞에 나와서 율동할 사람? 하면 나는 내가 맡고 있는 행정일도 제쳐놓고 앞으로 튀어나가 율동했다.

하고싶어서가 아니라, '주님, 저 좀 만나주세요! 제발요!' 라는 절박함이었다.

말씀도 한 자라도 빠뜨리지 않고 들으려고 했다. 행정일로 맨 뒤에 있어야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들으려고 했다. 하나님이 말씀이시라고 하니까.. 나 좀 여기서 나와야겠으니까.. 한 말씀이라도.. 떨어지길..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삼일째 되는 날..

한 말씀이 나에게 떨어졌다. 심목사님이 앞에서 외치고 계셨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는 이미 죽은 자로 여기라!"

"만약, 이미 죽은 나의 시체가 자꾸만 살아나려고 하거든 밟아! 그리고 이미 죽은 자로 여겨!"

"나의 옛사람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여겨! 믿어! 그리고 날마다 예수께 너를 드려!"


그렇게 로마서 6장 말씀으로 나는 하나님을 만났다.

내 힘으로 절대 나를 포기할 수 없어서 그토록 지독하게 나에게 집착해 있던 나에게..

하나님은 말씀으로 찾아오셨고, 내가 집착하고 있는 '나' 가 이미 예수님 안에서 죽은 시체였음을 알게 되었다. '아, 내가 지금 시체를 붙잡고 있는 거구나. 이미 죽은 시체를 붙잡고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나의 옛사람은 이미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었구나. 그렇게 믿음으로 여기며, 다시 올라올때마다 그 시체를 밝으며 되는거구나. 그리고 날마다 나를 예수님께 드리면 되는거였네!'


생각보다 너무 단순하고 간단한 원리.. 그것이 믿어진 것이 은혜였다.

나는 그 때 나라는 강한 자아를 처음으로 내려놓아본 것 같다. 나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만나면서..

(물론 그 이후에도 과정은 계속 있었다) 정확히는 나를 내려놓아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버리는 것이 내가 죽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자유해지고 사는 길이었지..


회개란 무엇일까.

어쩌면 회개란,, 나의 죄가 드러나는 순간 그냥 예수님께 달려가 그 옷자락이라도 붙잡고 매달리며 '주님, 저 좀 만나주세요. 저 좀 여기서 나오게 해주세요' 부르짖으며 주의 얼굴을 구하고 또 구하는 것 아닐까.. 주님이 나를 만나주실 때까지..


후회와는 무엇이 다를까.

후회는 하나님이 없이 내가 내 문제를 상황과 사람들 속에서 해결해보려는 사람의 특징이 아닐까.

사울이 하나님이 아닌 사무엘의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지듯..

유다가 예수님께 가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자책감을 해결하듯..


회개와 후회의 차이는 하나님께 모든 답이 있음을 믿고 그 분께 전심으로 매달리냐 아니냐의 차이가 아닐까. 우리는 다 후회하며 인생을 산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다면, 그 분께 모든 소망이 있음을 믿는다면 우리는 후회가 아닌, 회개를 해야 한다. 전심으로 주님의 얼굴을 찾고 또 찾고 구하는 그 회개 말이다.


렘29:12-13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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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


조성기
조성기
Mar 31, 2021

아멘~ 주님, 저도 살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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